내 일터에서 사람이 죽었다. 처참한 사고였다. 거대한 바퀴에 깔려 그대로 압축당해 피곤죽이 되었다. 일하느라 자신의 삶을 정리할 찰나의 시간도 갖지 못한 채.
죽음 이후 현장에는 비가 내렸다. 현장의 피를 어떻게든 씻어내야 하듯이. 우중충한 하늘에 내리는 비는 피를 씻겨내고 씻겨냈다. 죽음이라는 말과 어울리는 날씨였다. 나는 사고 구역 통제로 인해 먼 길을 돌아와야 했다. 그 도중엔 희생자에 대한 원망과 오지 않은 실감에 대한 무감각이 동시에 느껴졌다. 그렇다. 나는 그의 죽음을 진심으로 안타까워하지 않았다. 비는 계속 내렸고, 현장은 똑같이 굴러갔다. 그 일이 없었던 것처럼.
현장에서는 언제나 죽음이 도사리고 있다. 수많은 경우의 수가 산재해 있기 때문이다. 거대한 구조물, 위험한 작업, 불안정한 물질들이 넘치는 이곳에서는 언제나 죽음에 대한 대비와 준비를 한다. 이곳에서 죽는다는 것은 그저 전쟁터에서 사람 한 명의 취급과 같다. 사망자는 통계가 되고, 본보기가 된다. 우리들은 사망사고를 계단 삼아 생존을 도모한다.
쉽게 말해 이곳의 죽음은 데이터일뿐이다. 모두가 이방인인 이곳에서 주변인을 제외하고선 가십거리다. 죽음이 무겁게 느껴지지 않는 이곳에서 나는 무덤덤히 그의 죽음에 대해 생각한다.
삶은 자기 자신이 주인공이라는 얘기를 많은 곳에서 들었던 것 같다. 하지만 실상은 나 자신이 없어도 세상은 이 현장처럼 아무 일 없던 듯이 굴러가며, 그저 대화와 소문의 화제 대상으로써 남에 의해 인생이 정의되고 정리되어 흘러버리는 것이다. 어떻게 보면 삶이란 거대한 자기최면이다. 거대한 우주의 한 티끌이란 실체 속에 자아라는 잡히지 않는 것을 실현하기 위해 발버둥 치는 게 우리 인생일 수도 있다.
이 일에 대해서는 말 그대로 '심심한' 조의를 보낼 수밖에 없다. 현장이라는 죽음이 언제나 도사리는 곳에선 진심으로 슬퍼하기엔 내일도 출근해야한다. 그저 이 사실을 모른 채 늦은 밤까지 아버지를 기다리는 핏덩이 같은 자식들이 없길 바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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