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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룸 20210101

에디터 바티 2024. 1. 1. 21:56

태곳적 아프리카엔 거대한 바오밥나무가 있었다. 나무는 태양이 주는 따스함과 창백한 달빛이 주는 안식을 받아 높이 자랐다. 나무는 자신을 낳아준 그들과 함께 하고 싶었다. 그런 소망과 달리 대지에 깊게 뿌리내렸기 때문에 그들이 있는 하늘엔 닿을 수 없었다. 그러던 어느 날 나무의 꼭대기엔 아름답고 고운 실로 소중히 싸여진 고치가 탄생했다. 그 고치는 나무의 분신이자 새로운 의지였다. 고치가 탄생한 시기는 세상에 차가움이 물러나고 푸르른 어린 청녹이 세상을 물들이고 있을 때였다. ‘봄’ 이라 불리는 시기였다. 언제나 이맘때 바오밥나무 꼭대기에서 봄을 나는 모이새들은 고치를 발견했다. 고치의 아름다운 자태에 반한 새들은 고치를 정성껏 보살펴 주었다. 고치에게 많은 이야기와 예쁜 이파리 그리고 봄의 싱그러움을 가져다주었다. 모이새의 보살핌을 받으며 고치의 실은 더욱 부드러워지고 고와졌다. 이런 모이새의 정성에 고치에게 작은 변화가 생겼다. 고치는 생각을 할 수 있게 되었다. “저 하늘에는 별 이란 게 있데. 별에 닿는 순간 우리들도 별이 될 수 있다는데.’ 어느 몸이 새가 한 말을 다시금 떠올린 게 고치의 최초의 생각이었다.


 

시간이 흘러, 탄생을 의미하는 햇빛이 길어짐에 따라 생명력이 폭발하기 시작했다. 어린 이파리들이 성숙해져 꽃을 피워 향긋한 향기를 폼 내기 시작했다. 나무들의 잎사귀는 푸르지다 못해 반짝거렸다. 동물들은 짝짓기를 하기 위해 자신의 기품을 올리고 있었다. 공작새는 더 화려해지고 사자는 더 강인해졌다. 세상의 만개. ‘여름’ 이였다. 고치는 나무 꼭대기에서 온화한 아버지 가장 가까이서 세상이 눈을 뜨는 과정을 지켜보았다. 하지만 모이새들이 새로운 봄을 찾으러 떠났기 때문에 고치는 혼자 여름이라는 변화를 맞이해야 했다. 고치를 지켜주는 모이새들이 없으니 수많은 동식물들이 고치에게 접근했다. 그 아름다운 모습에 반해 꽃과 꿀을 가져다주는 새들이 있는가 반면, 고치를 감싼 실을 탐내는 포식자들도 있었다. 그러한 과정 속에서 실타래는 점점 상해 가고 있었다. 고치는 아름다운 실타래가 잃기 싫었지만 점점 뜨거워지는 태양과 그 실타래를 탐내는 많은 포식자들 때문에 그것을 포기해야 했다. ‘모이 새들이 없으니 더 이상 고운실을 갖고 살수 없어. 내 실오라기를 선망하는 이들이 있는가 반면 오히려 내가 가진 걸 탐내는 이들이 있어. 내가 온전하기 위해선 이걸 벗어내야 해.’ 고치는 모이새가 가져다준 봄 향기가 스민 실타래를 벗게 되었다. 그 모습은 매우 볼품없는 모습이었지만 스스로를 지키기 위한 선택이었다. 그런 고치에게 더 이상 아무도 다가오지 않게 되었다. 고치는 실타래를 풀어낸 후 본연의 모습으로 햇빛을 온전히 받아내게 되었다. 고치는 자신의 안이 따듯해짐을 느꼈다. 비록 볼품은 없었지만 포근한 온도와 푹신함에 벌들과 나비들이 고치에 앉아 쉬어갔으며 아름다운 세상의 이야기를 고치에게 들려주었다. 푸르른 풀들이 광활히 펼쳐져 있는 초원. 바다라고 불리는 끝을 가늠할 수 없는 호수, 사막이라는 웅장한 자연의 폐허 같은 이야기들. 그 순간 느꼈던 두근거림은 스스로만의 착각이 아닐 것이다.


 

여름이 점차 지나가고 시원한 바람과 온화한 햇빛 그리고 은은한 달빛이 어우러지기 시작했다. 세상을 덮은 초록이 점차 고운 갈색으로 화하며 저물어 가고 있었다. 수많은 생명들이 다시 잠을 준비하는 시기가 왔다. 세상의 휴식. ‘가을’ 모든 친구들이 떠나가고 홀로 남았다. 창백한 어머니가 별들을 이끌며 고치에 안식을 주는 시간이 늘어나고 있었다. 모두가 떠난 외로운 밤이 올 때면 고치는 지난 여름날 아버지가 주었던 따듯함을 속에 간직한 채 하늘을 보았다. ‘어머니는 나를 조용히 지켜보셔. 나를 차갑게 대하는 것 같지만 실은 추운 어둠 속에서 나를 지켜주고 계신 거야. 별들이 그 증거니.’ 안에 있는 게 점차 두근거리는 게 느껴졌다. 고치는 곧 다가올 미래를 예견한 듯 풀어놨던 자신의 실타래를 다시 감기 시작했다. ‘내 안의 소중한 것을 위해 준비를 해줘야만 해.’ 냉기가 살짝 스민 차가운 바람이 고치를 스미듯이 지나가며 지난 여름날 아버지의 사랑으로 뜨거워졌던 안의 존재를 식혀주었다. ‘세상은 햇빛만으로 살 수 없지. 세상 모든 게 날 사랑한다면 난 불타 사라질 거야. 가끔은 사랑에서 벗어나야 할 때도 있어.’ 고치는 곧 다가올 혹독한 겨울을 대비하면서 점차 자신의 존재에 대해 느끼기 시작했다. 고치는 자신의 윤곽을 느끼는 듯이 생각했다. ‘이제 시련이 온다. 창백한 어머니가 별들과 함께 나를 지켜볼 때야.’ 고치는 쓸쓸하고도 아름다운 가을을 혼자 보냈다. 가을은 고독이 허락된 계절이기에 고치는 누구의 도움과 이야기 없이 자신이 곧 겪을 시련에 대비했다. ‘내 안의 소중한 것이 이 고치를 너무 편안히 여긴다면 날아오를 수 없을 거야. 날개는 고통 속에서 피어나는 법이니까. ‘고치는 외로움을 배운 뒤 겨울을 맞이했다.


 

추위는 밤만큼 길었다. 생명에게 혹독한 계절 ‘겨울’ 바람의 비명소리와 대지의 고함이 들리는듯한 세상은 모든 게 얼어붙고 앙상해졌다. 눈이 쏟아져 내려 고고한 풍경이 펼쳐졌다. 고치는 나무 꼭대기에서 백색으로 덮인 세상의 적막이 메아리치는듯한 울림을 느낄 수 있었다. 세상의 고동과 고치의 박동이 같이 두근거리고 있다. ‘고치의 실타래가 따듯하진 않지만 날 죽게 하진 하지 않고 있어. 나머지 고통은 내가 온전히 감내할 몫이야.’ 고치 안에는 온화함이, 고치의 실타래엔 강인함이 있었기에 하루하루 버텨나갈 수 있었다. 고치는 앙상한 나무 위에서 끝에서 끝으로 운행하고 있는 온화한 아버지와 창백한 어머니를 언제나 바라보았다. 고치는 언젠가 자신이 탄생한 바오밥나무에서 어머니와 아버지가 완벽한 균형을 이루고 있는 모습을 보았다. 온화한 아버지는 지평선에 온화한 빛을 깔아두고 있었고, 창백한 어머니는 고치에게 마지막 손길로 어루만져 주었다. 새로운 햇빛을 머금은 겨울바람이 고치에게 불었다. 바람의 방향에 따라 고치는 별을 바라보았고 날아가고 싶단 생각을 하였다. 세상의 고동과 고치의 박동이 일치되는 순간, 아름다운 나비가 낡은 고치를 풀어내고 날아올랐다. 투명한 날개와 순수한 색으로 빚어진 아름다운 나비였다. 나비의 목적지는 별들이 있는 곳, 자신의 탄생지인 나무 바로 위에 언제나 아버지와 어머니 사이에서 빛났던 별들에게 가는 것이었다. 나비는 별을 향해 날아오르면서 부모님이 이름을 지어주시듯이 자신에게 ‘Ego’라는 이름을 지어주었다. 창백한 어머니의 손길을 타고 태어난 나비는 지평선에 올라탄 뒤, 온화한 아버지를 향해 여명을 그리며 날아가 ‘irum’이라는 별이 되었다.

 


어느 아프리카 부족은 그 별의 위치를 보며 새해를 가늠했다. 그 수치는 놀랍도록 정확해서 많은 학자들의 관심을 받았다. 먼 훗날 어느 이방의 국가에서는 그 말들이 각자 다르게 쓰이게 되었는데 나비의 이름 ‘ego’는 서양에서 인간의 정체성을 정의하는 말이 되었고 ‘irum’은 동양의 한 작은 어느 국가에서 ‘이루어지다’라는 소망의 뜻이 담긴 말이 되었다고 한다. 고치가 시련을 겪고 개화하여 자신이 있어야 할 곳으로 날아간다는 이야기는 꽤나 전형적인 이야기다. 그렇지만 그 가치는 변하지 않았기에 이 이야기가 지금까지 흘러오는 것이 아닐까? 새해로 넘어갈 때의 별들을 유심히 지켜보라. Ego가 향한 이룸의 별이 당신을 지켜보고 있을지도 모르니까. 여러분

들의 ego 역시 이룸을 향해 날아갈 수 있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