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나나 알러지 원숭이.
군 시절, 1년 5개월을 복무한 상말이었던 나는 이도 저도 아닌 상태였다. 꽤 했다곤 할 순 있으나 전역과는 먼 실로 애매한 위치였다. 사람에겐 우울이라는 감정이 언제나 도사리고 있는데 이때쯤이 우울해지기 딱 좋았던 시기였다. 그 시기에 우울이라는 감정에 대해 자신이 소망하고 있는 걸 현실적으로 이룰 수 없을 때 느껴지는 낙담이라고 정의를 내렸었다. 나의 윗동기나 말차 나가는 선임들을 보며 시간이 흘렀다는 걸 실감을 했었다. 그걸 보며 상말이라는 애매한 '짬쟁이'들도 전역을 소망하지만 아직 자신에게 먼 이야기인 걸 낙담과 함께 깨닫곤 했던 것이다.
나는 그때 이 끈적한 우울의 늪에서 지낸지 꽤 오래됐었다. 이 우울의 늪은 꾸리꾸리 한 기운을 풍기며 외로움, 공허감이라는 수렁으로 나를 깊이 빠트렸다. 나는 잘 때 혹은 TV에 볼 게 없으면 그러한 수심에 빠진 채 내일이 오질 않길 바라면서도 시간은 빨리 흘러가길 바랐었다. 특히 TV에 볼 게 없으면 밤하늘에 별과 달이 사라진 것 같은 공허감에 시달렸다. 2018년 4월은 메이저 걸그룹이 아무도 활동을 안 했던 때였다. 그때 당시 시점에서는 생방송 음악프로들이 우리에게 보여주라는 메이저 걸그룹은 안 보여주고 죄다 보이그룹에 가끔 이레귤러와 같은 아티스트들만 보여줬었다.
지난 회차를 돌려보는 것도 지쳐버린 상말의 우울은 충동적인 행동들을 불러오기 충분했다. 괜히 나오는 가수들을 욕하며 별 별것에 대한 불만을 표시하고 어디에다가도 화내는지 모르는 방향 없는 욕지거리를 해대기도 하였다. 군대라는 집단이 정말 사람 미쳐가게 하는구나를 스스로 자각하면서도 분노를 표출하는 데에 묘한 쾌감까지 느껴버리는 지경에 갔었다. 그 시기의 음악 프로그램을 볼 때면 나와 같은 동기들 역시 각자의 방식대로 자신의 꼬인 심성을 표현했으며 불같은 성미와 차가운 냉소 등이 브라운관 아래에 '2분 증오'로 펼쳐지고 있었다.
그러던 와중 우리에게 진통제 같은 그룹이 컴백했다. 정확히 데뷔했다는 게 옳은 표현일 것이다. 오마이걸의 유닛인 오마이걸 반하나라는 그룹이었다. 이름부터 심상치 않음을 느낀 우리는 그들에게 주목하기 시작했다. 콘셉트는 매우 충격적이었는데, 원숭이가 바나나를 좋아하지만 알레르기가 있어서 먹지 못한다. 대신 바나나맛을 느낄 수 있는 바나나우유가 있어서 행복하다는 콘셉트였다. 그랬다. 그때 당시 저들이 무대 위에서 춤을 추고 노래 부르며 표현했던 원숭이의 고뇌와 행복에서 난 왜 동질감을 느꼈던 것일까. 전역을 바라지만 하지는 못하고 대신 사회를 느낄 수 있는 텔레비전이라는 바나나맛 우유를 먹고 있던 나 자신이 원숭이로 느껴졌다.
한가지 다른점은 난 바나나맛으론 행복해질 수 없는 불쌍한 원숭이였다는 것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