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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스 병사의 유언.

에디터 바티 2024. 1. 1. 21:57

좋은 산문이란 무엇일까.

물론 좋은 산문의 기준을 쉽사리 단정 지을 순 없다. 산문은 인간의 생각을 수사적으로 풀어낸 기록이기 때문에 거기에 대한 정의를 섣불리 내리긴 힘들다. 하지만 좋은 산문의 기준은 단순함에서 찾을 수 있다. 자신에게 좋은 글이 곧 남에게도 좋게 느껴지는 것. 이는 곧 좋은 글이라는 포괄적인 개념으로 넘어가게 된다.

좋은 글은 독자의 입장으로 글을 읽어보았을 때 일어나는 두뇌 작용으로 자신의 정신 상태에 대한 균형을 맞출 수 있는 글이다. 쉽게 말해 자신이 화가 나있는 상태면 마음을 가라앉히는 글, 나태에 빠져있으면 당장 침대에서 일어나게 하는 글, 사랑에 실연 당해 좌절하고 있으면 다시금 새로운 인연을 찾을 수 있게 하는 글이다.

내가 본 이야기에서 느낄 수 있는 감정은 방금 얘기한 균형과는 조금은 다른 느낌이다. 산문은 감상적인 이야기이다. 그리고 그 안에 삶의 강한 함축이 담겨있다면 적은 문구만으로도 강력한 힘을 가진 글이 탄생하게 된다. 그리스 병사의 유언이 '물'이라는 문구 하나임에도 수많은 이야기와 생각이 머릿속을 파고든다.

고대 희랍 철학자가 이런 얘기를 한 적이 있다. 수많은 그리스 병사들의 유언이 '물..' 이였다는 것이다. 좋은 산문의 조건은 우리가 당연하다는 듯이 충족하고 있는 욕구에 대해서 새삼스러운 감상을 던져주는 글이 아닐까. 물이라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지는 우리는 알고 있다. 하지만 가끔씩 그 풍요로움으로 인해 잊을 때가 많다. 풍요로움 속에서 갈증을 생각하는 것. 그것이 높은 차원의 행복이다.

그들이 겪은건 일리아스에 나올법한 전쟁에 나가 적을 죽여 쟁취하는 명예와 영광이 아니었다. 가장 원초적인 욕구인 갈증마저 충족시키지 못한 채 타지에서 비참히 죽어가는 그리스인. 이게 전쟁의 현실이고, 화려한 전쟁 영웅들로 수놓아진 역사의 본모습이다.

그리고 그들의 유언은 여타 창작물에 나오는 세상을 뒤흔들거나, 한마디로 세상을 짧고 굵게 요약한 뜻깊은 한마디가 아닌 자신의 욕구에 대한 비참한 단말마였다. 물 앞에서는 인간의 존엄과 이성은 의미가 없어지는 것이다. 이 이야기를 접하고 난 뒤, 내가 보장받고 있는 것들이 얼마나 소중하고 중요한 것들인지 실감하게 되었다.

우리는 갈등의 시대에 살고 있다. 하지만 이는 평화의 시대로고도 불린다. 세상 곳곳에 비참함과 전쟁이 아직 존재하지만, 인권과 법 그리고 자본으로 인해 유례없는 부를 누리고 있는 현시대다. 갈등이 많다는 것은 그만큼 세상이 평화롭다는 반증이기도 하다. 오히려 평화롭기 때문에 사람들이 한뜻으로 뭉칠 필요가 없다.

언젠가 세상에 큰 화가 덮쳐, 물마저 구하기 힘든 세상이 올지도 모른다. 그때가 되면 차라리 이렇게 지지고 볶고 난장판이던 현재를 그리워하지 않을까. 먹고 마시는 욕망이 충족되는 것만으로도 우리는 살아있을 수 있고, 더 나은 판단을 할 기회를 항상 신에게 받고 있다.

살아있는 한 기회는 존재한다.